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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독서일기 :)

책 [입 속의 검은 잎]

by 커리밥알 2024.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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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의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은 일상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 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기형도 시인은 1960년에 태어나 1989년 3월 젊은 나이에 타계하였으며, 그의 시 세계는 우울했던 유년시절 -편찮으신 아버지, 시장에 나가서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 공장에 나가 일을하던 누이와 그런 누이가 1975년 일찍죽음을 맞는것-과 부조리한 사회의 기억들을 기이하고 따뜻하게 시로 풀어내었다.  

 

실제로  [입 속의 검은 잎]을 볼때면 밝지않은 배경임에도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 시를 읽는 모든 독자들의 내제되어있는 우울들을, 기형도 시인  자신의 유년시절과 부조리한 체험들을 통해 어루만져 주고있는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총 60편의 시가 실려있는 [입 속의 검은 잎]의 도입부에는 '시작 메모'가 적혀있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11) 

 

* 오래 된 서적 中  p25

...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였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 오후 4시의 희망 中 p31

...

김은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 본다, 쏟아질 그 무엇이 남아 있다는 듯이

그러나 물을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것이다, 빵 껍데기처럼

...

그러나 가볍게 건드려도 모두 무너진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네

김은 그를 바라본다, 그는 김 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 

 

* 입 속의 검은 잎   p58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느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잡힌 옷가지를 펼칠때마나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음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느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느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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